-공정한 사회-
김풍배
중심 기압 960 헥토파스칼
태풍 ‘곤파스’가 북상하고 있다고
매 시간 뉴스마다 특보로 알려준다
고요하다, 바람 한 점 없다
실바람 솔바람 살랑바람 치맛바람까지
모두모두 어디로 갔나 했더니
바람이란 바람은 다 징집되어
서귀포 앞 바다로 몰려갔단다
감췄던 것 ,숨겨 놨던 것
지나다가 은근 슬쩍 봐 뒀던 것
이참에 올라오며
다 파헤친다던데
지연 학연 바람 타면 겁날게 뭐 있어?
이곳에서 살다간 바람
여기 지날 땐
옛정 생각해서라도 스리슬쩍 눈감아 주겠지?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학연 지연은 애초부터 없었다
부잣집 통유리창도 내려앉고 가난한 집 쪽박도 날아갔다
지체 높은 집 뜰 안 나무도 뽑혔고 들녘 소나무도 부러졌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한 사회란 이런 것이야 라고 하듯.
태풍 3
-진짜 강한 것-
태풍 ‘곤파스’가 할퀴고 간 뒷산
표정까지도 바꿔버렸다
부러지고 꺾이고 뽑히고
두죽박죽 누워있는 모습이
방금 끝난 전투 뒷마당 같다
한숨 내쉬며 문득 올려다 본
솟을 바위틈에서 자란 진달래나무 한그루
건재하다
꺾인 건 대체로
제 바닥에서 잘 자란 나무들이고
뽑힌 건 십중팔구
옮겨 심은 나무들인데
바위 틈새처럼 척박한 땅에서 자란
보잘 것 없는 나무들은 끄떡없다
IMF시절 구조조정 태풍 불 때도
낙하산 인사는 우선순위로 뽑히고
잘나가던 꼭대기 인사는 잘려나가도
별 볼일 없던 나 같은 인사는 끄떡없었지
태풍 4
-해바라기 사랑-
꽃밭을
태풍‘곤파스’가 지나가며
유독 질투한 꽃
해바라기는 남김없이
부러지고 뽑혔다
해만 바라보며 산다는 건
죽음도 두렵지 않아야.
태풍 5
-전족-
태풍 ‘곤 파스’가 지나간 후
뽑힌 나무를 보았다
전족한 옛 중국 여인처럼
발은 작고 몸뚱이만 크다
인생살이 태풍 몇 번
겪지 않는 사람 어디 있나?
쓰러지지 않기 위해선
이고 지고 걸머멘 욕망의 짐들
벗어놓고 내려놓아
분수만큼 사는 것 말고 더 있을까?
시달린 나무는
뿌리를 한 번 더 깊이 내린다
이미 넘은 시련은 시련이 아니다
태풍 지난 하늘이 청보석처럼 맑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