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연
/김풍배
생각해보니 참 악연이다
추호도 네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피 괄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심코 내 집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총을 쏘다니...
선거에 같이 나선 적도 없고
아무리 족보를 톺아봐도 조상끼리 싸운 역사도 없는데
하필 내 대에 와서 왜 이런 악연으로 만났는지 알 수가 없다
욱하는 성미에 네 목숨 앗아 놓고 보니 후회막급이다
셋까지만 세며 생각했어도 한 생명 구했을 텐데...
아무래도 수양부족이다
재판장에게 따지겠지
애초부터 하늘에서 낸 자리가 따로 있느냐고...
새로운 자리치고 너무 편안하고 비도 맞지 않고 시끄럽지도 않고
게다가 적당히 향내도 나고...
그래서 더불어 살고 화합하여 살자는데
느닷없이 쳐들어와 무작정 밟으려 해서
죽는 줄 알아 정당방위로 쏘았는데 그게 무슨 죽을죄냐고,
하지만, 나도 진술하련다
그대는 자격이 없는데 자리를 차지했으며
구두의 현재 소유권은 내게 있고 그래서 무단 주거 침입이며
더구나 사전 예고도 없이 공격할 때 나는 무방비 상태였고
아픔은 마치 쇠못으로 마구 찌르고 유리조각으로 사뭇 후벼 파는 듯했다고,
왼쪽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아 새벽 댓바람에 응급실에 실려가
거금 오만 팔천 원 들여 이제 겨우 추슬렀다고,
앉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자리에 앉았을 땐
결국, 저도 죽고
남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지네야 왜 몰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