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만난 어떤 사람

                          /김풍배

 

비가 오면 빗길을 가고

눈이 오면 눈길을 가고

볕 좋은 날이면 맨 길을 가고

장화 한 켤레면 넉넉하리라

 

낮엔 벗어 여름대로 살고

밤엔 입어 겨울처럼 살고

유월이 한 여름 같다고 뭐 그리 대순가?

헐렁한 파카 옷 한 벌이면 충분하겠지

 

다 버리고 다 내려놔도

물은 생명의 근원

유사시엔 물도 양식

호주머니 꽉 차도록

그래서 두 병씩 챙겨 넣은 게야

 

신문 몇 장 옆구리에 끼었지

신문은 세상 내다보는 창문

一日不讀書(일일불독서)하면 口中生荊棘(구중생형극)이라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다소 묵었으면 어떠랴

펴 놓으면 깔개가 되니 一石二鳥(일석이조)로구나

 

머리는 깎아 무얼 하리

머리털은 면류관이요

身體髮膚(신체발부)는 受之父母(수지부모)라

(신체의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것이다)

어찌 함부로 자를 수 있겠는가?

치렁치렁한 머리 삼단 같다

 

남도 나 안 보아 좋고

나도 남 안 보아 좋고

세상도 나 안 보아 좋고

나도 세상 안 보아 좋고

볕(陽)도 좋고 비(雨)도 좋고

살 부러진 우산은 삿갓 대용이지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어떤 웃음이든 웃고 있을 것 같다

 

부자가 따로 있나

마음 넉넉하면 부자인 게지

햇살 고운 유월 아침

느릿느릿 흰 구름 걸어가듯 흘러간다

저작권자 © 내포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