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삵

(살쾡이)은 식육목 고양잇과의 포유류로 197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동물이다. 하지만 서식지 파괴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했다. 현재 삵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상태며, 국가적색목록 평가에선 취약(VU)’ 등급으로 분류된다.

조선시대만 해도 삵은 우리 강산에서 매우 쉽게 볼 수 있는 동물 중 하나였다. 1454년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한반도 335개 지역 중 276개 지역에서 삵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됐다. 특히 공물로 바쳐진 동물 가죽 중 가장 많은 209개의 군현에서 기록된 동물이 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특히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은 쥐약이었다. 1960~70년대, 부족한 양곡을 훔쳐 먹고 질병을 퍼뜨리는 쥐를 박멸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전국 쥐잡기 운동을 실시했다. 쥐잡기 운동 끝에 쥐가 크게 줄어들었다. 1972년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총 4,7286,027마리의 쥐가 잡혔으며 목표 대비 91.4%의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과 뒤에는 삵의 심각한 멸종위기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쥐약을 먹은 쥐를 삵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당시 쥐약에 사용된 물질은 인화아연제(zinc phosphite)’였다. 이는 소량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맹독물질이다. 문제는 이 인화아연제가 들어 있는 쥐약을 쥐가 먹을 경우, 위장의 산과 반응해 유독한 인화수소가스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쥐를 삵이 먹을 경우, 인화수소가스에 중독되고 결국 죽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했던 삵 복원에 희망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68년 발생한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인 ‘1.21 사태때문이었다. 1.21 사태는 19681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군의 침투로였던 북한산 우이령 일대의 출입을 40여년 동안 금지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자 북한산 우이령 일대의 자연 생태계는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멸종위기종인 미선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종과 어종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동물들도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국립공원공단에서는 삵도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천수만에는 얼마나 많은 삵이 있을까.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꼭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탐조시 자주 눈에 띄는 수준으로 많다. 천수만 인근 농가에서는 닭장을 침입하여 닭을 물어갔다는 피해소식도 간혹 들린다.

붉은 여우 보호처럼 큰돈은 아니지만 농가에서 삵의 피해를 입은 닭값 정도는 보험금으로 지급해주는 방법도 있다. 한반도 고양잇과 사냥꾼의 자존심을 지키는 마지막 존재인 삵. 때로는 고양이처럼 귀엽게, 때로는 호랑이보다 날렵한 포식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매력적인 사냥꾼이 진짜 최후의 사냥꾼이 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자연과 함께 하는 세상이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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