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간월호 영상

바다가 막히기 전 간월도(看月島)는 천수만 외로운 섬이었다.

나룻배가 아니면 사리때 물이 완전히 빠지면 열리는 간월도와 강당리 사이에 드러나는 감길을 걸어 뭍으로 나갔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닷길에 올랐기에 이곳을 신발 뿌리라고도 불렀다.

간월도 사람들은 감길을 이용하는 것을 가미(갯벌 땅으로)로 간다라고 말했다. 가장 긴 감길은 10리나 되어 서산장을 보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다. 감길에는 대나무 가지를 꽂아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날이나 달 밝은 밤에 길을 잃지 않는 안내자가 되었다.

예전에는 간월도를 피안도(彼岸島), 간월암은 피안사(彼岸寺)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미혹(迷惑)과 번뇌(煩惱)의 세계에서 깨달음(涅槃)의 세계인 피안(pāra)의 땅. 그곳이 피안도였다.

밀물이 들어오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리웠던 간월암. 무학 대사는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경허 스님(1849~1912)의 법제자인 만공스님(滿空, 1871~1946)1942년 서산 간월암에 들었다. 일본 순사들의 접근이 어려운 바다 한가운데 외딴섬 암자에서 대한독립의 천일불공을 시작했다.

해방 다음 날인 1945816, 만공 스님께서 나라의 상징 꽃인 무궁화의 꽃망울을 따서 붓을 삼아 세계일화라는 휘호를 쓰신 까닭이기도 하다. 간월암은 깨달음의 섬이며 일제의 집요한 공작에 의해 말살될 운명에 처했던 우리나라 선불교의 맥을 지켜온 곳이다.

간월호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10월 보름달 1년에 딱 하루만 주어지는 간월호의 비경이 펼쳐지는 날이다. 날은 맑아야 하고, 물안개도 없어야 한다. 오직 모래톱에 긴 하루의 휴식을 위해 모여드는 기러기들이 피안의 땅에서 휴식을 청해야 한다.

무학대사의 깨달음을 인도했던 그 달이 저 달이 아닐까. 달빛을 따라 기러기들이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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