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역사책 '해미읍성실록' "해미읍성 각자성석을 찾아라!"

서산교육지원청 역사해설 마을교사 김인숙 선생이 각자성석에 대한 설명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서산교육지원청 역사해설 마을교사 김인숙 선생이 각자성석에 대한 설명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문화유산허브 해미읍성, ‘성벽에 새긴 역사’ 문화재 활용사업 프로그램에 꿈새움 마을 교육공동체(대표 권태순)학생 20명과 마을교사등 동문1동 주민자치회 주민포함 35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문화유산허브 해미읍성은 21일 꿈새움 마을 교육공동체 3~6학년 학생이 참여한 가운데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읍성 각자성석(刻字城石)과 해자(垓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각자성석은 읍성 성벽을 쌓을 때 동원된 각 고을별로 책임 구간을 정하기 위해 새겨진 성벽 돌로 1417년(태종 17)부터 1421년(세종 3)까지 4년여 동안, 충청도 백성들이 돌을 쌓으면서 성벽에 공사 구간마다 이들의 출신 고을명을 새긴 흔적이다.

또 성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심고(해미읍성을 별칭 탱자성이라 부르는 이유다), 연못을 만든 해자의 흔적도 찾았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이다.

“앗! 선생님 여기에 각자성석이 있어요.”
“앗! 선생님 여기에 각자성석이 있어요.”

조선은 城의 나라였다. 서울의 도성, 수원의 화성, 그리고 전국 각지의 읍성과 산성 등 160여개의 성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고려 말과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각 군현의 소재지에 읍성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선의 읍성들은 1910년대에 대부분 훼철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신작로를 만든다는 구실을 내세워 성벽을 훼철하고 일본인들은 성안의 객사, 동헌, 관아 건물들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은 군청 사무실로 썼고, 규모가 작고 낡은 것은 철거했다. 읍성을 없애버리면서 정신적으로 한국인들이 모일만한 구심점을 제거하여 식민통치를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현재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조선의 성곽은 서산의 해미읍성과 고창읍성(모양성), 낙안읍성에 불과하다.

서산교육지원청 역사해설 마을교사 김인숙 선생님에게 각자성석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물찾기에 나선 꿈새움 마을 교육공동체 학생들은 해미읍성 정문에 해당하는 진남문 옆 성벽에서 공주와 청주, 그리고 동문방향 성벽에서 임천, 부여, 서천, 한산 등의 각자성석을 찾았다.

이번 프로그램 진행에서 후원한 동문1동 주민자치회(회장 이정규)주민들도 참석했다.

이정규 회장은“해미읍성 성벽만을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각자성석의 글자가 있는 줄은 처음 알게 되었다”며 "뜻있는 역사 프로그램에 참석 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해미읍성 동문성벽에서 탐방기념 사진을 추억으로 남기는 모습.
해미읍성 동문성벽에서 탐방기념 사진을 추억으로 남기는 모습.

문화유산허브 해미읍성 관계자는 “무심히 지나치면 성벽의 돌담에 불과하지만, 각자성석을 발견하는 순간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문화재청의 문화재 활용사업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있는 역사를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문1동 주민자치회 주민들과 꿈새움 마을 교육공동체 학생들이 모여 생생문화재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을 남겼다.
동문1동 주민자치회 주민들과 꿈새움 마을 교육공동체 학생들이 모여 생생문화재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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