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깼다.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빽빽이 적어놓은 수첩을 꺼내 봤다. 반복되는 일상은 마치 마취 주사를 맞은 듯 기억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 예외는 없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어제는 현재를 사는 바로미터다.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또한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오감으로 현재를 느낀다. 때론 표정과 말투가 마음의 상처로 다가온다. 나를 만드는 과정이기에 기꺼이 감수한다. 그리고 성숙한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유년시절 익히 들었다. 일만 하는 개미. 놀기만 하는 배짱이, 과연 누가 승자일까? 개미는 온종일 일만 한다. 낭만이 없다. 여유가 없다. 그것마저 좋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베짱이는 또 어떤가? 낭만주의자에겐 미래가 없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앞날이 우울하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본다. 험준한 길을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일개미가 있는가 하면, 미래를 잊은 채 밤거리를 허우적대는 베짱이도 있다.

난 천성이 일개미다. 앞만 보고 달렸다. 옆을 보는 건 사치였다. 다행히도 그것이 좋았다. 지루하지 않았다. 보람 있었다. 사람과의 만남이 좋았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웠고, 심적 거리는 이보다 더 했다.

이러한 만남 속에서 나는 헤어짐이라는 용어를 쓰려 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 그것이다. 이젠 인연이란 말로 귀결할 때가 온 듯싶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과오 투성이의 불완전한 결합체다. 그러나 우열 지을 수는 없다. 그것은 나만의 것이며 비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나만의 멋진 인연을 만들었다. 비록 나만의 생각일지라도 소중하다. 나를 있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또 다른 일상이 나를 기다린다. 이젠 또렷이 들을 수 있다. 아침을 여는 새의 지저귐을, 아스팔트와 닿는 거친 파열음을. 심호흡 해 본다. 폐에 닿는 공기가 한결 부드럽다. 머리가 맑아진다. 깨끗한 정신으로 맞이한 하루는 낭만과 여유다. 온전한 정신으로 엮는 매일은 나를 살찌운다.

반복됐던 일상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의외로 많다. 먼저,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을 찾고 싶다. 못 나눈 이야기가 무수하다. 글 쓰는 일 또한 게을리할 수 없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나답게 하는 값진 작업이다. 또한, 자연과 함께하고 싶다. 자연의 이야기를 글로 담는 것도 꽤 매력적인 일일 테니까.

16년간 공직에 몸담으며, ‘행복’이란 말을 셀 수 없이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행복하냐는 말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이제 공직에서 한발 물러나 이에 대한 해답을 차분히 생각해 볼 계획이다. 미처 몰랐던 것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싶다.

하루 후면 7월이다. 이제 일 년의 남은 반이 시작된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에겐 절호의 기회다. 진정 의미 있는 한 달이다. 딱히 할 일 없이 즐기기만 한 베짱이가 되기는 싫다. 낭만과 여유는 또 다른 시작의 활력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다.

어제의 잘못을 교훈 삼아,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다가올 내일은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다. 16년간 노력해 왔듯이,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걷고 싶다.

그동안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 걸어온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랑스러운 서산시의회 의원으로 함께 걸어준 동료와 지인들을 비롯한 나를 아는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혼자 걷는 길이 어딘지 허전해 보여도 나를 성숙하게 하는 시간이다. 주어진 시간을 뜻있게 보내고자 한다. <이철수 서산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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