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은 / 사회복지학 박사, 청소년연구소 소장

얼마 전 극장 주변 길을 걸어 집에 귀가하는 길이었다. 이르지 않은 저녁시간, 어느 골목에서나 봄직한 평범한 차림새를 한 세 남학생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들만의 공유언어를 써가며 내 앞을 걷고 있었다. 피곤과 상념으로 멍하니 그들의 뒤를 따라 걷노라니 그들의 언어들이 그저 내게까지 들리는 상황이었다. 먼저 앞질러 가고 싶지도 않고 해서 그냥 터벅터벅 따라 가고 있었다. 그때, 한 남학생의 핸드폰이 울리고 연이어 전화내용이 자연스럽게 내게 까지 들렸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어휴 알았다고!! 끈어!”

여기까지도 그 또래의 평범한 아들들과 그 또래의 아들을 둔 평범한 엄마와의 일상적 전화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동안 놀라움에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문제는 그 다음 상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xx, x같은x, 저는 놀고 싶을 때 다 놀면서 내가 쪼끔만 놀려고 하면 x지랄이야, xx "

옆에 있는 두 친구에게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떠들며 욕을 하더니 급기야 “아~ 악! xx x같애~~”로 어디를 향한 분노인지 알 수 없는 비명으로 마무리를 하더니 무슨 말인가를 더 들으란 듯이 보태면서 총총히 멀어져 갔다.

분노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나타나는 감정적 표현이다. 이와 같은 분노는 남녀노소, 성인군자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갖고 싶은 것을 잃었을 때 아무대서나 큰 소리로 울어 버리는 어린아이에 비해 어른이 될수록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어른이 될수록 이성의 통제가 감정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어른들은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할 수 있고, 운동이나, 술, 흡연 등으로 분노를 풀 수 있기도 하는 특권이 주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 시기는 그렇지 못하다. 정해진 공간에서 자신의 욕구와는 다른 일들을 해야만 하는 학생 신분 시기는 분노를 조절하기 위한 방법에 미숙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제일 손쉽게 분노를 푸는 방법이 ‘욕’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욕의 사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사회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서울의 한 교육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 학생이 학교에서 1교시부터 4교시 까지 사용한 욕의 횟수가 무려 384번이었고, 그 학생이 그렇다고, 성적이 낮은 학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욕’의 사용은 초등학교 4학년시기부터 급격히 증가하여 또래문화에서 서로 어울리기 위한 방법과 소위 너와 내가 친한 사이임을 증명하기 위해 욕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직계에 대한 ‘욕’이다. 실제로 얼마 전 소위 말하는 비행청소년 프로그램을 한 학기 진행했을 때, 직계에 대한 욕을 서스럼 없이 입에 달고 있었던 여학생도 있었다. 다른 몇몇의 학생들도 부모에 대한 표현들이 곱지 않았으며, 알고 보니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는 부모에 대해 그렇게 말한 다고 했다. 부모는 친목회다 회식이다 나가서, 술마시고 노래하고 실컷 놀면서, 내가 좀 놀려고 하면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귀찮게 여기고 급기야 부모를 향한 분노의 감정을 욕으로 푸는 것이다. 누구나 다니는 골목길 어귀에서 큰소리로 부모를 향해 욕을 해대는 그 청소년의 말이 특별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현실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대개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한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해라”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명령조의 말들은 청소년 시기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로 인식시킨다.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을 하고는 있지만, 주체적이지 못한 자신에 대해 내면은 서서히 분노의 감정이 쌓인다.

인격적인 존재로 느끼게 하기 위한 대화로 “~해라”라는 명령조의 말 보다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좋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자녀로 하여금 동등과 공평의 의미를 심어주고, 부모님들이 자신의 내면을 이해해 준다는 느낌이 들게 하며, 부모에게 자기 자신이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느낌이 들게 한다. 혹시나 그동안 한켵 한켵 쌓여진 내면의 분노의 감정이 있다면, 한순간 와르르 무너뜨리는 데에 큰 효과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싫어한다. 특히나 자녀 앞에서 부모로서 “미안하다”라고 말하면, 자신의 체신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안하다”라고 먼저 말하는 사람에게 더 미안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깨워서 미안 하구나” “오랜만에 친구만나서 노는데 학원가야한다고 말해야 해서 미안하다” “컴퓨터 더 하고 싶을 텐데 끄라고 해서 미안해~” 라는 사소한 대화부터, “엄마 아빠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혼을 하게 되서 너한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라는 말까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보자. 나를 간섭만 하는 부모님도 나약한 존재이고, 내가 독립된 주체로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경각심에 더욱 책임감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오늘 나도 아들에게 말해야겠다.

“... 다~ 미안하다...”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 미안 한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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