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기분 언짢은 경우도 있고 기분 좋은 날들도 있다. 언짢은 경우를 겪다보면 내가 사과해야 할 경우도, 또는 사과 받았으면 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사과.

별 것 아닌 말이고 또 별 것 아닌 것 같은 행동의 표현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막상 내가 사과를 하는 또 사과를 받아야 하는 주인공이 되고 보면, 사과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인간 갈등 해소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한 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나’라는 자신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게 되는 심각한 정신적 소용돌이에 빠지는 몹쓸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혹자들은 ‘나를 낮춰 나를 높인다’고 세상물정 모르는(?) 말을 하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게, 쉽게 융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험한 세상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를 낮추는 순간 세상이 나에게 어떠한 형벌을 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진정한 사과를 꺼리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의 치욕스런 참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단절시키고 적당한 선으로 협상한 결과물인 조건부 사과를 즐겨하게 되나보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합니다.”라는 말에는 ‘당신이 기분 나쁘지 않은 정도라면 (비록 내가 잘못한 것 같긴 하지만) 사과드릴 이유가 없으니 반면 떳떳하다’라는 자기 최면을 은연 중 암시하고 있다. 전혀 합리화 되지 않는 모순적 말임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몹쓸 자존심은 최후의 보루로 ‘조건’을 달고 ‘아니면 말고’식의 사과를 입 밖으로 내뱉게 된다.

진정한 사과에 조건은 필요없다. 조건을 다는 순간 진정 사과가 아닌 (법률용어로)부진정 사과가 되는 것이다. O와 X사이에 있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가 된다는 것이다. 좋아도 말고 아니면 더 좋고 식의 부도덕의 철면피, 부진정 사과.

“죄송합니다”, “사과합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을, 굳이 조건을 달아 사과의 진정한 의미를 훼손하지 말자. 사과를 받으나 받지 않으나 상관없는 일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꼭 사과를 해야 하고 꼭 사과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관계라면, 진정 사과를 할 때 ‘무조건 사과’를 하여야 할 것이다.

갖가지 부사와 형용사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덮는 조건부 사과는, 진정으로 용서를 갈구하는 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가슴 벅찬 하루가 되기를.

 

                                                         충청남도서산교육청 행정7급 최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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