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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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밤은 정말 기나긴 밤이지요.

특히 외로운 사람이 홀로 지새우는 밤은 그야말로 적막함만 남지요,

그리운 님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은 얼마나 시리고 아플까?

그 외로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어 님 오신 밤에 길게 풀어 놓고 싶은

연모의 정을 맛깔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한시대의 미모와 풍류를 자랑했던 여인,

그 사랑의 한이 오늘날 동짓달 밤에는 어떨까?

문명속의 동짓달 밤은 그리 그토록 애절하지 않다.

그 동짓날 밤에 나는 가족과 함께 영화관으로 갔다.

제목은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였다.


우리 동양에서는 24절기가 있다.

24절기는 농경사회에서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행위의 구획을 정하는데도 요긴하였다.

일 년 24절기의 하나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 바로 동지이다.


24절기는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 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낮은 점차 짧아져서 동지 날에 가장 짧아진다.

그리고 밤은 길어 정말 길고 긴 밤을 지새우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 밤은 점차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는 시점이 다가 왔다.

밤은 음의 기운이요. 낮은 양의 기운이다.

이제 음의 기운은 사라지고 양의 기운이 점차 용솟음친다.

동지를 계기로 시대의 역경을 딛고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빈다.

동지는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희망의 절기이다.


중국의《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런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한국적 의미로 토착화하였다.


옛 선인들은 동지를 일컬어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라 여겼다.

그래서 경사스런 날로 여겨 속절로 삼았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살 더 먹는다' 는 옛말은

동지가 지니는 시작의 희망을 더해준다.

이제 동지를 기점으로 새로운 시작의 기지개를 펴야 한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동지에는 여러 가지 풍습 있었다.

우선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다.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다분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지만

팥죽의 축귀(逐鬼) 기능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동지팥죽이절식이고, 팥은 붉은 색 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데 이용되어 왔다.

조선시대 민속을 정리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동짓날을 아세 (亞歲)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쑬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사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설화 같은 이야기를 밑을리 없겠지만

그래도 동짓날을 기점으로 해서

모든 액운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심상으로 힘차게 나아가

희망찬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날 같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동지가 새로운 희망이기를 바란다.

 

충청남도태안교육청 학무과장 /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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