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개화리(開花里)의 ‘화’자와 반곡리(盤谷里)의 ‘곡’자를 따서 화곡리(花谷里)라 하였다.

화곡리 비석군에는 원래 개항기의 비석들만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세운 비석을 추가하여 현재 4기의 비석이 화곡1리 마을회관 옆에 세워져 있다. 추가된 비석은 일본인 와다나베가 저수지를 만들고 바다를 막아 개척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북쪽에는 삼길산(三吉山)이 바다가 솟아 있고, 남쪽에는 화곡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대호방조제로 생긴 대호지가 위치해 있고, 당진군 석문면과 이어져 있다. 북쪽의 삼길산 주변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탄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대호방조제 건설 이전의 화곡리는 삼길산 밑의 반곡리에서 이루어지는 농업과 삼길포의 실치잡이가 주요 산업이었다. 현재는 같은 화곡리 내에서도 남쪽과 북쪽의 경제적 기반이 판이하다. 남쪽은 화곡저수지 주변의 논농사 주업을 이루고 특산물인 포도 재배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마을에서도 밭 면적은 작지만 육쪽마늘 수확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81세 고령에도 아직도 4반 반장을 맡고 있는 조한태 어르신은 마늘을 수확하시며, 우리 화곡1리(반곡)은 사람들이 인심이 좋아 외부에서 오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더불어 같이 사는 좋은 마을이라고 자랑이 대단하시다.

옛날에는 벼를 수확하여 곳간에 두고 문을 닫지 않아도 훔쳐가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대산공단으로 독곳, 대죽리에서 이사 오고 외부인들도 늘어 마을이 거의 포화상태이지만 그래도 같이 사는 이웃이 있어 행복하다고 전한다.

김창환(74세) 노인회장은 65세이상 어르신이 80명 정도로 마을경로회관이 인원대비 협소하여 불편하고 시설도 노후되었다고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산시 대산읍 화곡1리(이장 이명준) 주민들은 음력 2월 초하루인 12일 당집에서 제를 올리고,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철종 6년(1855년)에 마을 안녕을 위해 지어진 당집에서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이 같은 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당제 후 마을회관 앞에서 볏가리 내리기 행사로 화합의 시간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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