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맹세를 한다거나 약속을 다짐할 때 사람들은 ‘…무엇 무엇에 대고 맹세한다’거나 ‘무얼 걸고 약속할게…’라고들 한다. 자기 말이나 신용만으로는 안 믿어줄 때 끌어다 쓰는 말이다. ‘하느님 앞에 맹세하고’ ‘내 명예를 걸고’ ‘사랑을 두고…’ 같은 것들이다. 그 중에 가장 신용이 떨어지는 것이 힘센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써먹는 ‘직(職)을 걸고…’다.

우리에겐 지난 세월 수많은 선거를 치르면서 수없이 되풀이해온 버릇이 있다. 잠시 부글부글하다 앞서 내뱉은 거짓말은 쉬 잊고 그 다음 거짓말만 붙잡고 흥분하고 성낸다. 중앙의 눈치 빠른 정치꾼 권력자들은 그걸 알고 또 이용해 먹었다. 지금 우리가 다지고 경계하자는 건 바로 그런 과거의 정치 의식 패턴을 깨자는 거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잊고 순진하게 또 속아 넘어가는 미망(迷妄), 그 묵은 체질을 깨는 것이다.

선거 공약을 보면 금방이라고 지역 현안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다. 어느 후보 하나 뒤지지 않는다. 아무나 된다 하더라도 서산시로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그 약속은 공약(空約)일 뿐이다.

금방 식고, 잊고, 몰표 찍어줘 온 우리다. 위쪽 타지 사람들은 그런 걸 충청도 핫바지라고 빗댄다. 자학처럼 들리지만 그걸 한두 번 겪고 들었던가.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선거연설 때 이런 대목이 있었다. ‘…약속을 팔고 다니고 거짓말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또 경솔하고 순진한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쉽습니다. 그러나 팔고 다닌 약속 역시 화풀이할 줄 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눈여겨볼 구절은 ‘경솔하고 순진한 유권자’와 ‘빈 약속도 화풀이한다’는 대목이다.

지난 수십 년 우리는 경솔하고 순진한, 아니 어리석고 바보 같은 유권자였다. 그들의 빈 약속에 제대로 ‘화풀이’ 한번 시원히 해본 일도 없다.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 격인 매번의 선거판. 헛맹세에 더 이상 시골 촌뜨기 취급 받고 싶지는 않다.

박해철 내포시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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