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 박두웅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고 종합예술이자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고들 한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넘쳐나는 것이 동서고금의 정치사(史)다. 겉으로는 정책과 노선을 두고 합종연횡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자리다툼과 개인의 입신이 자리하곤 한다. 때로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부터 선거철만 되면 야권에서는 후보단일화라는 말이 유행병처럼 떠돌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보수적이고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의 정책과 노선)의 실정을 심판하기 위해서 반대하는 모든 집단이 모여 한사람의 후보를 내자는 전술이다. 실제 야당 단일후보전술은 최근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여당에 맞서는 야당(광의로는 야권성향의 무소속까지 포함하여 소위 ‘범야권’)이 말 그대로 ‘연대’를 할 때는 분명한 명분과 정책의 합의가 우선돼야한다. 모든 면에서 100%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핵심적인 정책과 강령, 전략에서는 합의돼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야권후보 단일화라는 ‘전술’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한나라당이 아닌 사람’을 당선시킬 것을 선거의 목표로 삼는 다는 것은 공허(空虛)한 측면이 있다. ‘한나라당이 아닌 사람’은 언제나 한나라당 후보보다 시민과 국민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인가? 정책과 노선도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것이 분명한가? 야권단일후보로 되기까지 그 후보가 살아온 이력이 진보와 개혁,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후보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국법(國法)을 준수하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왔는가? ...등등의 원칙을 제대로 세워서 단일화에 접근해왔냐고 물어 보면, 적어도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검증의 절차도 없이 단지 야권이 승리하는 것을 당면의 과제로 보고, 최선(最善)의 후보가 아니더라도 차선(次善), 차악(次惡)이라도 최악(最惡)을 이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역(逆)으로 야권단일후보가 ‘야권이라서’가 아니라 ‘여당후보 보다 능력과 자질이 낫다’라는 것도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구체적이고 철저한 검증도 없이 야권단일후보라는 시류에 쉽게 편승하여 선거에 임하는 것은 자기당착이고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다.

정책과 노선, 가치의 공유가 가능한 부분에 한하여 연대하여 정책을 만들고, 함께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러 나라의 사례도 있다. 또한, 각자의 정당으로 출마하여 선거를 치러 얻은 일정한 성과들을 가지고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그 속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책을 실현해가는 나라도 더러 있다.

무조건적인 단일화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민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좁히는 역작용도 분명히 있다. 국민들은 어쩌면 좌(左)에서 우(右)까지 각양(各樣)의 정당들이 제시하는 각색(各色)의 정책을 비교하고 판단하기를 원한다. 눈앞의 선거에 연연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버리고, 심지어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정책을 가진 정당끼리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사고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또 야당단일후보로 선택받기 위해 야당의 옷을 입고 다니거나,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투사인양 야당통합이나 야권연대를 외치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조건에 가까운 야권단일화나 야당통합을 말하기 전에 얼마나 상대방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고 있는가? 상대방이 같은 길을 갈 만한 사람인가?를 자문하고 답을 얻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러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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