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악처(惡妻) 중 한 명으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를 꼽는다. 크산티페는 잔소리가 심한데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욕지거리와 함께 물을 뒤집어 씌웠다는 악행(?)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과연 그녀는 악처였을까. 아니라고 본다. 아니, 돈 한 푼 벌어다 주지 못하는 주제에 밤낮 철학한다고 ‘제자 놈’들이나 몰고 다니는 무능한 남편에게 욕 좀 하고 물벼락 좀 씌었다고 악처라 한다면, 성모마리아나 바보가 아니고서야 악처 아닐 사람 누가 있겠는가?

집집마다 액자로 걸어놓고, 심지어는 화장실 소변기 앞에까지도 붙어 있는 “네 자신을 알라.” 하는 소크라테스의 명언(名言)을 찬찬히 음미해보라.

소크라테스가 크산티페 앞에 무릎 꿇고서 듣던 “니 꼬락서니를 알아라! 이 영감태기야” 하는 ‘바가지성 훈계‘ 에서 영감을 얻은 건 아닐까?

역사적인 악처의 남편들이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로 길이 남게 된 반면,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의 남편을 위시하여 조선 최대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남편 등은 형편없는 ’좀생이‘로서 아내의 그늘에 안주하다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멋진 갈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웅장한 자태와 포효(咆哮)로 온 초원을 압도하는 백수의 왕 수사자도 늙어지면 무리에서 쫓겨나 외롭게 떠돌다 죽고 만다.

심지어 벌, 거미, 사마귀의 수컷들은 종족보존의 숭고한 의무를 마치고는 암컷에 잡아 먹혀 후손의 먹이가 된다. 인간사회의 수컷인 남자는 어떠한가. 먹거리를 구해올 뿐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해야 한다는 구실로 온갖 부권(父權)을 누리며 큰소리 뻥뻥 치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인간세계도 다른 동물처럼 수컷들의 역할은 점점 그 비중이 줄어가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그간 배 밖으로 나와 있던 ‘간땡이’는 집어넣고 스스로 공처가(恐妻家)가 되자. ‘어진 여자는 남편을 공경한다(賢女敬夫)’ 는 낡은 명심보감 말씀일랑 집어 던지고 ‘어진 남편은 아내를 공경한다(賢夫敬婦)’로 바꿔야 한다.

유승규 / 내포시대 자문위원

저작권자 © 내포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