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배
가을이 되면
시름시름 앓아야하는 병
한 없이 올라간 파란 하늘
옥양목 같은, 티 하나 없어
마음이 서글퍼지는 병
추억의 조각들처럼
놀이터 옆집 벽에 붙어있는 담쟁이 잎
소슬한 바람 훑고 가면
물결처럼 그리움이 일렁거리는 병
여름 다 간줄 모르고
밤 이슥하도록 울어대는
늙은 매미의 넋두리 소리에
가슴 쓸어내리며 울적해 지는 병
명함을 태운다
멀어진 인연들 나뭇잎인양 떨어낸다
허튼 맹세 같은 이름은 연기로 피었다가
불꽃 속으로 사라진다
명함도 없는데
도렷하게 새겨진 이름하나
지울 수 없다
가을을 타는 사람
깊고 머언 가을 속으로
휘적휘적 만종 소리따라 걸어가고 있다